결혼식을 올리고 본가에서 가져온 짐을 정리(사실은 이곳저곳에 잘 숨기기)하다가 엄마가 한때 내 생일 때마다 써준 편지들을 발견했다. 엄마의 편지에는 엄마 인생에 관한 고단한 한숨과 ‘시집’ 갈 생각도 안 하고 늙어가는 딸과 오랜 고시 공부로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하는 아들에 관한 걱정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수년이 지나 엄마의 편지를 다시 읽노라니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딸의 생일을 온전하게 축하하기 힘든 엄마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에서마저 그렇게 우울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까?
명절 연휴에 오랜만에 엄마와 산책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안양천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나는 늘 그렇듯 엄마의 이야기를 흘려듣거나 “아휴~ 그 이야기는 그만해!”라며 타박을 했지만 올해부터 명절을 함께 보내게 된 동거인 Y는 엄마의 이야기를 꽤 정성껏 들어주었다. 덕분에 엄마는 그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속마음을 꽤 많이 꺼내놓았다.
“어휴~ 이건 막장 드라마야.” 익숙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내던 엄마가 어느 대목에서 한 말이다.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물론 대략의 정황은 알고 있던 사건이었으나 자세한 내막과 그 시기를 거치고 난 후 꽤 오래 힘들었던 엄마의 속사정까지는 미처 몰랐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 ‘막장 드라마’와 같은 일을 겪던 시절에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길 자주 거부했다. 반복 재생되는 나를 향한 비난으로 끝나는 엄마의 푸념에 꽤 상처를 받던 시기였으므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엄마와의 적절한 거리두기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인생에 자신의 불행과 행복을 연동시키는 엄마가 부담스러워 되도록 엄마의 이야기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그런 나를 서운하게 여긴 엄마가 나에게 엄마의 사정을 털어놓을 방법이란 편지, 그것도 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밖에 없었을 거라 짐작하니 뒤늦게 짠한 마음이 생겼다.
많은 이들이 노희경 작가의 대표작이자 ‘인생 드라마’로 꼽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나는 꽤 불편하게 봤다. 노년이 된 ‘엄마’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이제는 너그럽게 봐야 한다고 드라마는 내내 나를 가르쳤지만 ‘딸’인 나의 속은 시끄러웠다. 특히 완의 엄마, 장난희는 ‘짬뽕집’을 운영하는 면이나 딸을 ‘나의 것’으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오랫동안 중국집을 운영했던 나의 엄마와 닮은 것도 같아 싫었다. 정확하게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상’을 입은 듯 쓰렸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 인생에 포함되고 싶지는 않은, 엄마를 이해하지만 섣불리 손을 잡기 두려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감당할 자신이 없는 딸의 사정은 누구에게서 이해받을 수 있을까 싶어 작가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드라마를 지켜봤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끝으로 나는 노희경 작가에 관한 애정을 상당 부분 거두게 되었다. 물론 부모의 넓고 깊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 부모 세대의 고단한 인생 덕분에 젊은 너희들이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지, 그래서 노년이 된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지 말하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과유불급’이었다. 엄마들이 딸에게 집착하고 이상하게 구는 건 다 이유가 있으니 이해해야 하고, 석균 아저씨와 같은 남성/가장들의 무뚝뚝함과 폭력성도 사실은 사랑임을 알아야 한다고 외치는 만큼 ‘딸’인 나도 이해를 받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의 드라마에서 나는 그의 ‘연민’의 대상에서 소외된 것은 아닌가 의심도 들었다.
딸의 생일 편지에 기어이 자신의 고단함과 걱정을 담아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걸 읽고 가장 기뻐야 했을 날, 도리어 엄마를 향한 연민과 죄책감으로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려야 했던 딸의 마음을 엄마는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마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덧붙임) 모녀 사이의 정을 담은 꽤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던 글이 정반대의 이야기로 흘러가서 당황할 독자에게 원래 인생이란 적절한 ‘막장’ 요소가 있어야 재미있는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