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처럼 네 자매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이야기”라는 드라마 설명글을 읽고 ‘아 그 이야기보다 더 강렬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죠. 가난, 돈, 예술, 여성 등 이야기가 펼쳐지는 기본 바탕은 소설과 비슷하지만 이 드라마의 작가가 영화 <아가씨> <비밀은 없다>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드라마 <마더>를 쓴 정서경 작가이니, ‘드라마 볼 결심’을 단단히 하고 보게 되었어요.
<작은 아씨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저만의 방식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소설과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는 소설처럼 네 자매가 등장합니다. 물론, 셋째로 태어났던 인선은 소설 속 베스처럼 돈이 없어 제 때 치료받지 못하여 죽고, 인주, 인경, 인혜 세 자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인주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경리가 된 ‘가녀장’이자 메그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순수한 허영을 가진 인물입니다. 인혜는 방송국 기자로서 조처럼 정의감과 공명심을 가진 둘째입니다. 막내 인혜는 에이미처럼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욕망을 실현하는 야심가입니다.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 죽어버린 인경은 가난한 세 자매의 의식 속에서 살아갑니다. 젖먹이 아이 시절 엄마 품에서 언니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을 가진 인혜는 ‘가난하면 죽는다’는 감각을 익히게 되죠. 소설 속 이야기가 작고 단단한 것이었다면, 드라마는 판을 키워 돈에 관한 큰 이야기로 발전시킵니다.
#가난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가난’입니다. 정서경 작가의 전작인 <기생충>에서는 그런 가난의 문제를 ‘냄새’라는 메타포로 풀었다면, 이 드라마에서는 태도와 감각, 습관 등의 문제로 풀어냅니다. 인주와 인경이 동료들에게서 왕따를 당하며 사회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는 이유는 ‘가난한 습성’ 때문인 것으로 설정되죠. 원령가의 딸이자 박재상의 부인 원상아가 인주를 자신의 연극 무대의 주인공으로 발탁한 이유와 인주의 선배 진화영이 인주를 복수 동료로 삼는 이유 모두 인주가 “가난한 주제에 희망찬”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난은 구두, 코트, 아파트 등 메타포로 설명되곤 합니다. 싸구려 구두를 신은 인주에게 장현민 이사는 이런 말을 하죠.
- 장현민 : 우리가 주는 돈으로 괜찮은 구두를 사. 안 그러면 평생 발을 질질 끌며 살게 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또 원상우와 오인주는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 원상우 : 돈 있으면 뭐 사고 싶었어요?
- 오인주 : 음... 겨울 코트?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 여름은 그럭저럭 남들 비슷하게 입을 수 있는데, 겨울옷은 너무 비싸니까요.
- 원상우 : 겨울 코트 사아죠. 겨울 코트가 있어야 우리가 겨울을 기다리죠.
그리고 화영은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인주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에게 20억을 남긴 채 사라지고, 세 자매의 고모할머니는 인주에게 “영혼을 받아주는” 한강뷰 아파트를 유산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나죠.
#푸른 난초와 원령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푸른 난초인가?” 싶을 정도로 푸른 난초가 의미 있게 자주 등장합니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푸른 난초 나무가 있는 ‘원령가’는 모든 비극이 일어나는 곳이죠. 푸른 난초는 희귀종으로 알려진 꽃으로서 환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푸른 난초와 원령가의 연결고리는 ‘베트남 전쟁’입니다. 드라마는 ‘베트남 전쟁’으로 대표된 전쟁과 국가주의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사유합니다.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불의한 전쟁에 투입된 하층민들이 국가에 의해 버려진 상태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푸른 난초'때문이었죠. 그것에 취해 그들은 살아 돌아왔고, 부동산을 중심으로 악착같이 부를 축적하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교육과 정치를 활용하여 사회 곳곳을 지배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공고히 합니다. 작가는 이 세계의 세계관을 가진 이들을 살았으나 죽은 ‘영혼(원령)’으로 은유함과 동시에 호흡기에 의존한 채 목숨만 부지한 원기선 장군을 통해 이미 죽었으나 아직 죽지 못한 상태인 가부장 체계를 비판합니다. 그러니까 이 큰 이야기는 결국 이미 죽어버린 폭력적인 가부장 체계와 어떻게 맞서고 탈출하는가의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닫힌 문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키워드는 ‘닫힌 문’입니다. 닫힌 문은 연극을 전공한 원상아가 유학 시절 만든 작품 이름이기도 하며 이 드라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모티브가 되는 개념입니다. 원상아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원령가’에서 견디지 못하고 비밀의 방에 갇혀 있다가 결국 죽은 엄마로 인해 비밀의 방의 안에 자신을 가둔 채 닫힌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한 비극적 인물입니다. 잔혹하게 죽은 엄마와는 다르게 “미친년”의 길을 선택한 원상아는 그 세계를 가장 탈출하고 싶었던 인물이지만, 도리어 그 세계의 방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의 딸, 효린은 다른 삶을 선택합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돕는 인혜와 함께 ‘아버지의 세계’를 탈출한 것이죠. 결국 그 닫힌 문에서 나오지 못한 원상아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죠. 원상아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 푸른 난초는 시들고, 원기선 장군의 생명도 끝나죠. 마지막 회에서 인주가 폭탄을 닫힌 문을 여는 데 사용하여 원상아까지 데리고 탈출했다면 어땠을까 싶어 아쉬웠지만, 원상아는 그 세계를 온전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기에 죽음은 필연이라 생각합니다.
#여성 서사
<작은 아씨들> 속 인물들은 겹겹이 ‘닫힌 문’을 뛰쳐나와 서로를 구원하는 강한 존재들이기도 했는데요. 이 강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저는 '희생'이라는 키워드로 생각해봤습니다. ‘정란회’에 대항하는 이들은 서로를 위해 자신이 가질 수도 있는 것을 포기하거나, 목숨을 걸고 ‘염산 비’를 함께 맞으며 버텼기에 강할 수 있었고, 그 강함으로 그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즉, 힘과 욕망으로 가득한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길은 거룩한 희생밖에 없지 않나 싶은 것이죠. 그렇기에 오 실장이 자꾸만 인주를 향한 최도일의 감정을 사랑인지 확인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세계에서는 ‘이성애’와 ‘돈과 권력으로 얽힌 관계’만이 그럴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죠. 인주와 화영, 인혜와 효린, 인주와 최도일... 이들의 관계는 그 이상, 그 너머에 있는 관계였으니까요(조금 다른 범주이지만 ‘정란회’와 원상아를 지키기 위해 투신한 박재상의 '희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여성 서사’라는 키워드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세 자매, 인주와 화영, 인혜와 효린, 원상아와 오 실장 등 이 드라마는 여성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견인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 여성들은 연민, 욕망, 분노 등을 두루 갖춘 복합적 인물로 그려졌다는 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죠. 이에 관해 정서경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견해를 밝히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재현된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남성이 사랑할 수 있는 이상적인 여성상인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안다. 우리 자신은 아름답고 착하고 경이롭고 선량한 존재가 아니다. 저는 여성으로서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결함과 부족함이 드러나 있는 상태로 사랑받기를 바란다.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야 캐릭터가 성장할 수 있다. 올바른 선택, 완전한 선택을 하는 캐릭터의 이야기는 시작할 여지가 없다.”
즉, 이 드라마는 불완전하지만, 천천히 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로도 압축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