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금 바빠서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다가, 빡빡한 일상에 숨구멍을 내고 싶어 달달한 연애 드라마 한 편을 시작했어요. 한번 시작한 드라마는 일단 4회까지는 본다는 생각에 4회까지 봤죠. 그런데 어쩐지 다음 화로 넘어가기 쉽지 않더라고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나름의 이유로 엇갈렸던 남녀 주인공이 여러 사건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한 연애 생활을 하겠구나… 라고 예측이 되니 그들의 연애가 더는 궁금해지지 않았어요. 알아서 잘 살겠거니. 😙
그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에 드디어 더는 남의 연애사가 궁금해지지 않는 순간이 온 것인가? 싶었어요. 사실 연애 드라마를 안 보거나, 중도 하차한지 좀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요즘 드라마들도 연애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연애 드라마가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기가 없을 뿐이죠. 한때는 ‘병원에서 의사가 연애하고, 법정에서 변호사가 연애하고, 경찰서에서 형사가 연애하는’ 드라마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에는 그럴 낌새라도 보이면 ‘다 된 드라마에 연애 좀 끼얹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이런 추세는 왜 생겼을까요? 오컬트, 추리수사, SF 등 장르가 다양해지며 자연스레 ‘연애하지 않는 드라마’가 늘어났기 때문이지만, 이른바 ‘4 非(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를 지향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연애에 관심이 없어진 것일까요?
사실 ‘그들의 연애’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제 말은 ‘뻥’입니다. 연애 드라마는 안 봐도 <환승연애 2>는 정주행 했거든요. <환승연애>는 이미 헤어진 연인이 자신의 X와 다른 커플의 X들과 3주 동안 서울 모처와 제주도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서로를 탐색하고, 새로운 연애를 시도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나와 사귀었던 X가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하며 나의 ‘망한 연애’들을 돌이켜 보다 보면, 도저히 다음 회차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래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을 안 보다가 2020년 시즌1을 밤새워 정주행 한 후 자연스레 시즌2도 챙겨보게 되었죠.
드라마에서 연애 이야기는 인기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연애 전성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데요. 이 글을 준비하며 확인해보니 최근 진행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무려 스무 개가 넘더라고요. 과거에 방영되었던 <짝>이나 꽤 많은 마니아층을 보유했던 <하트 시그널>과 같이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한 곳에 모여 생활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간다는 단순한 포맷부터 <환승연애> <돌싱글즈>와 같이 이별과 새로운 연애를 함께 다룬 포맷이 추가된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남의 연애> <메리 퀴어>와 같이 성소수자의 연애, <팻미픽미>와 같이 ‘반려견’을 중심에 둔 연애까지 시장(?)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며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에덴>이나 ‘자만추(자보고 만남 추진)’를 하는 <잠만 자는 사이>와 같이 자극적인 설정으로 논란이 된 프로그램도 나오게 되었죠.
이런 프로그램들이 왜 이렇게 급증했는가에 관해서는 최근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저도 이런 현상을 꽤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아무리 ‘연애’에 흥미를 잃은 시대라지만 ‘남의 연애’를 지켜보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히 강하구나 싶기도 하고, 일정한 패턴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속 연애 서사가 너무 뻔하기에, 조금 더 역동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대본도 없는 세계에서 연애 상대를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정형화 된 드라마보다는 ‘날 것’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드라마 속 연애보다는 더 현실적이어서 완전 ‘남의 연애’가 아니라 조금 가까운 ‘남의 연애’를 보게 되는 재미도 있어서 드라마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보게 되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과몰입’하여 보게 되는 면도 있어요.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패널들이 적절하게 중계를 해주니 마치 누군가와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이러니 요즘 연애 드라마를 보겠나 싶더라고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