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야, 내 서방 죽은 지 40년이 넘었다. 언젠가는 다 잊고 괜찮아지겠지 기다리고 살다가 깨달은 거이 뭔지 아네? 그런 날은 안 온다. 억지로 안 되는 거는 그냥 두라. 애쓰지 말라. 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는 거야. 받아들여야지 어카네. 억울하잖아. 그 대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더 재미나게 살면 돼.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어. 걱정 말라. - 유보라, <그냥 사랑하는 사이>(JTBC, 2016)
한 인간의 죽음은 사적인 일이지만, 어떤 죽음은 사회적인 사건이기도 해서 어떤 형태로든 동시대인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12년 전 '스페이스 S몰'의 붕괴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 현장에 있다가 여동생 연수를 잃은 문수, 아버지를 잃은 강두, 건물 붕괴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자살한 건축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된 아들 주원. 서로 모르는 사이인 이 세 명은 그날 같은 장소에서 재난을 당했다. 12년 후, 이들은 그 그 붕괴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12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문수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충격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알콜의존자가 되어 딸의 사망 보상금으로 차린 목욕탕을 근근이 운영한다. 강두는 붕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했지만 다리에 철심이 박혀 3년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집은 풍비박산이 나고 재활치료를 끝낸 그는 부모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주원은 당시 쇼핑몰이 붕괴 한 진짜 원인을 찾고자 아버지의 설계도를 그대로 재현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를 떠오르게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사회적 재난인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을 생각나게 한다.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재난 이후를 사는,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죽음은 영원한 현재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런 죽음에 부채감을 가지고 살지만 또 누군가는 “이제 그만 잊으라"며 그 죽음을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게 가능할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극 중의 약쟁이 할머니는 말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드라마는 말한다. 아프더라도 애써 기억할 것. 힘껏 사랑하며 재미나게 살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