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어떤 드라마는 ‘드라마 세계’를 뚫고 나와 사회적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만든 사회적 공간을 통해 우리는 그간 미디어가 소외시킨 사회적 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논쟁적이지만 직면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좋은 질문을 품은 드라마는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게 하고,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며 고민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걸 이 드라마가 보여주었다. 다만 그간 미디어가 생산한 ‘서번트 증후군’에서 얼마큼 벗어났는지에 관해서는 아쉽다.
2위 : <작은 아씨들>
소설 <작은 아씨들>을 상상하며 보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지만, 아프기 보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난’을 그저 개인의 운명과 능력 문제로 협소화하지 않고 ‘베트남 전쟁’이라는 근현대사를 ‘유령’ 담론과 연결지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 비판까지 나아간 담대하고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이 돋보였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가 반복 재현한 여성상을 다르게 사유할 수 있게 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천천히 성장하고 연대하며, 폭력과 욕망이 지배하는 ‘아버지의 세계’를 탈출하는 여성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준 면도 좋았다. 다만 제한된 분량에 비해 너무 큰 세계관을 담다 보니 베트남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다소 불친절하게 담긴 것은 아쉽다.
3위 : <옷소매 붉은 끝동>
과거의 시대를 보여주는 사극도 충분히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걸 입증한 드라마. 왕의 주치의 ‘대장금’이 딸을 낳았다면 ‘성덕임’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그 성덕임이 궁 어딘가에서 여성 사관 ‘구혜령’과 만나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며 봤다. 이런 상상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보여준 과감한 상상력 덕분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간 무수하게 만났던 군주의 사랑을 받는 궁녀가 아닌 “궁녀에게도 자신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음을 알고 실천하는 주체적 인간임과 동시에 직업적 자부심이 강한 일하는 여성이자, 우정을 소중하게 여기며 연대를 이어가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성덕임을 만날 수 있었다.
4위 : <시맨틱 에러>
흔하디흔한 캠퍼스 연애물인데 ‘남녀’ 주인공이 아니라 (잘 생긴) ‘남자’ 주인공들이 캠퍼스에서 서로 싸우다가 연애하는 드라마라니. 한국 드라마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BL 드라마가 드디어 ‘양지’에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는 이 드라마를 ‘흔한 이성애 연애 서사’를 답습했다고 비판할지도 모르지만 BL 드라마라고 굳이 특별할 이유가 있을까? 이성애나 동성애 구분을 떠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랑, 그로 인한 고통과 행복과 성장 과정을 담아낸다는 면에서 충분히 보편적이고 ‘대중 서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면에서 이 드라마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시맨틱 에러>는 마치 이성애 연애만 존재한다고 믿도록 보여준 한국 드라마 세계에 때마침 도착한 미래다.
5위 :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의 전작들이 대중의 취향에 최적화된 주문형 생산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작가적 주관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작가주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종교적’이기까지 했다. 그만큼 매번 자신을 뛰어 넘는 영리한 작가의 드라마이기에 다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조용히 몰입하게 하는 힘은 분명하다. “나를 추앙해요”라는 말로 세속에 찌든 채 낭비되고 있는 사랑을 해방시키고, 엄마가 밥하다 죽음으로서 ‘해방’된 것을 포함하여 각자의 방식대로 ‘해방’을 이야기하는 면이 좋았다. 당분간은 ‘추앙’과 ‘해방’ 등 특정 단어는 이 드라마로 귀속될 것이다. <나의 아저씨>처럼 누군가에게는 ‘인생 드라마’가 될 드라마.
올해 과소평가된 시리즈
<글리치> :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올해 만난 드라마 중 가장 낯설고 이상한 드라마. “4차원 그 이상의 추적극”이라고 제작진이 밝힌 설명처럼 이 드라마를 하나로 정의하긴 어렵다.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SF드라마이고,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상한 여성들의 우정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여성서사이고, ‘하늘빛들림교회’라는 사이비 교회와 종교적 레토릭이 나온다는 면에서 종교적 해석도 가능한 복합적 드라마다. 너무 욕심을 부려서일까? 이 드라마는 흥행 면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렇게 존재감 없이 보내기에는 어쩐지 아깝다. 이 드라마를 제대로 평가해야 우리는 다음 ‘4차원 드라마’를 기대할 수 있을 테니. “작가가 도대체 누구야?” 하고 정보를 찾아보게 만들었고, 전여빈과 나나의 (중의적 의미의) 미친 연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올해 과대평가 된 시리즈
<우리들의 블루스> : 노희경이라는 대작가의 작품이라는 면에서, 김혜자, 고두심, 이병헌, 차승원, 이정은 등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분량 상관없이 출연한 ‘옴니버스’ 방식의 작품이라는 면에서, 맑고 푸른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여 눈 호강을 시키는 작품이라는 면에서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기대작으로 꼽혔다. 물론 어느 정도 그 기대에 부응한 장점이 많은 드라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얽혀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는 ‘노희경 월드’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노희경 월드’는 이제 늙고 낡은 세계라는 확신을 하게 된 드라마이기도 하다. “모든 삶에 대한 응원을 담”았다는 제작진이 밝힌 포부와는 달리 임신한 여성 청소년, 육지에서 온 이방인 여성, 젊고 팔자가 드센 여성들은 과연 드라마가 말한 ‘모든 삶’에 ‘노희경 월드’에 포함은 되는지 의문이 생겼다. ‘연민’은 좋지만, 여전히 가부장-남성에게 편중된 ‘편협한 연민’은 이제 과거에 두고 와도 좋을 텐데 아직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